영월 동강사진박물관 1관을 두 번 돌았습니다. 처음엔 전체를 훑어보듯 걸었고, 두 번째는 작품들의 맥락을 읽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올해로 24회를 맞은 동강국제사진제는 7월 17일부터 10월 11일까지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영월군이 주최하고 동강사진마을운영위원회와 영월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는데요, 아프리카 대표 사진작가 8인과 한국 작가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중 국제주제전 작품들은 박물관 1층과 2층, 그러니까 1관과 2관 두 전시실에 나뉘어 걸려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1층 1관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전시장 마루에 표시된, 큐레이터가 제안하는 관람 동선은 상레 소리(Sanlé Sory)에서 시작해 조현택, 에드손 샤가스(Edson Chagas), 조 랙틀리프(Jo Ractliffe)를 지나 사뮈엘 포소(Samuel Fosso)로 끝나는 순서입니다. 그 동선을 따라 걸어보니 이 배치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수평적 대화'라는 말
이번 국제전의 주제는 [수평적 대화, 우리 사이에서] 입니다. 아프리카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식민 지배, 권위주의, 급속한 현대화가 땅과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전시회가 그 상처를 하나로 뭉뚱그리자는 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고, 각자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자리로 기획됐다고 합니다.
'우리 사이에서'는, 어느 한쪽이 중심이 되지 않는,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는 만남을 뜻합니다. 그런데 1관을 걸어보면 이 말이 그저 근사한 수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전시는 작가를 국적별로 몰아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레 소리 바로 다음에 조현택을 배치해서 아프리카와 한국이 처음부터 나란히 대화하게 만들었지요. '수평적 대화'를 관람 동선으로도 실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상레 소리 — 독립의 해에 문을 연 사진관
첫 번째 작가의 벽입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전화기, 오토바이, 여행지 배경막 같은 소품 앞에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연출합니다. 상레 소리는 1943년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서아프리카의 말리와 가나 사이에 낀 내륙국—에서 태어났고, 1960년, 나라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던 바로 그해에 초상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당시엔 이런 사진관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94년 말리의 바마코에서 아프리카 최초의 사진 비엔날레가 열리면서 상레 소리 같은 스튜디오 사진가들이 비로소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적인 기념사진 한 장이, 지금 보면 탈식민 시대 한 도시의 자화상이 되어 있는 셈이지요.
조현택 — 안갯속에서 되살아나는 것들
상레 소리 작가 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한국 작가 조현택의 작품이 시작됩니다. 작가는 1982년생으로, 도시와 비도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발견되는 파편들을 사진으로 모아 왔습니다.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충주 앙성면과 목계나루 일대, '골동품거리'라 불리는 곳을 찍은 사진입니다. 자동차가 쉼 없이 지나가는 38번 국도 건너편, 짙은 안개에 싸인 골동품과 수석들을 보면서 마치 오래된 것들의 정령이 살아나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상레 소리의 사진이 갓 태어난 나라의 자부심을 담았다면, 조현택의 사진은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현대화가 흘리고 놓치고 간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에드손 샤가스 — 뒤에서 빛나는 폐허
주최 측 자료에는 에드손 샤가스 작가가 찍은, 버려지고 지워진 도시의 표면들 옆에 조현택의 안개를 두면, 두 대륙에 걸친 무언의 대화가 완성된다는 해설이 있습니다. 전시장 중앙 벽에 적힌 비평 한 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평가 아주 느와그보구(Azu Nwagbogu)는 사진을 두고 '역사가 감광된 표면 위에 스스로를 눌러 새기고 머문, 작고도 정확한 장소'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제 마주할 샤가스의 작업이야말로 그 표면 위에 또렷이 새겨진 역사의 흔적인 셈입니다.
이 샤가스 작가의 사진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걸려 있습니다. 실제로는 다른 사진처럼 전시장 조명을 반사하는 것일 텐데, 언뜻 보면 액자가 아니라 라이트박스처럼 이미지 자체가 안쪽에서 빛을 뿜어내는 듯 착각이 듭니다. 녹슨 철망, 벗겨진 페인트, 얼룩진 콘크리트 벽—카메라로 찍었을 땐 그냥 폐허였을 이 표면들이, 전시장에서는 스스로 빛을 냅니다. 그 '감광된 표면'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조 랙틀리프 — 지워지는 얼굴과 되살아나는 얼굴
방 한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중간 벽입니다. 여러 작품이 걸려 있지만 유독 제 시선을 붙든 건 세월에 씻기고 갈라진 벽화를 그대로 찍은 듯한 두 점의 초상이었습니다. 이목구비가 거의 지워져서,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더군요. 김일성처럼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체 게바라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다만 랙틀리프의 연작 [세상 끝의 땅들(As Terras do Fim do Mundo)]은 앙골라 내전을 추적한 작업입니다. 당시 앙골라 정부군을 지원했던 쿠바나 소련의 지도자들인, 피델 카스트로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얼굴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중간 벽에는 훨씬 많은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지뢰 탐지기를 든 사람이 덤불 속을 걷는 사진, 버려진 가방과 천막 더미 곁에서 뛰노는 아이들, 뿔 달린 짐승의 머리를 클로즈업한 사진, 그리고 사람 하나 없이 마른풀과 그루터기만 빽빽한 흑백 풍경 여러 점이었지요. 앙골라의 옛 전장에는 지금도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합니다.
남아공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랙틀리프는 이 폭력의 잔여물을 찾아다니며, 땅 그 자체를 하나의 병리 현상처럼 들여다보았습니다. 랙틀리프는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찍지 않는 건 그들을 또 한 번 그 땅에서 내쫓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이 중간 벽에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권력자의 얼굴—벽화 속 정치 지도자들—은 지워져 가는데, 땅을 되찾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사뮈엘 포소 — 몸으로 되찾는 이야기
1관의 마지막 벽입니다. 다섯 작가 중 가장 급진적인 작업을 여기 배치했다는 게 실감이 나더군요. 사뮈엘 포소 작가는 1962년 카메룬에서 태어났습니다. 비아프라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지면서 어린 나이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Bangui)의 삼촌 집으로 피란했고, 겨우 13살에 직접 초상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고 합니다. 상레 소리가 독립한 해에 사진관을 열었듯, 포소 역시 어린 나이에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셈입니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저녁이면 그는 필름의 마지막 한 컷을 자기 자신에게 썼고, 그렇게 찍은 자화상을 나이지리아의 할머니에게 보내며 안부를 전했다고 합니다.
벽에는 교황 차림을 한 흑인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옆 얼굴로 반지 낀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댄 모습, 붉은 영대를 두른 채 십자가 지팡이를 짚고 바위 위에 올라선 모습 등. 이 연작의 이름은 [흑인 교황(Black Pope) 2017]입니다. 특히 바위 위 교황 사진은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라 노나 오라(La Nona Ora)]—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표현한 파격적인 조각 작품—를 재치있게 패러디했습니다. 원작 속 교황은 운석에 짓눌려 쓰러져 있는데, 포소는 그 운석 위에 당당히 올라서 있습니다. 짓눌리는 대신 딛고 선다는 것. 이 반전이 이 작품의 핵심을 요약하는 듯 했습니다.
전시된 작품 속 교황은 작가 자신인 포소입니다. 흑인 교황이라는 설정을 두고 잠깐 딴 생각을 했습니다. 가톨릭 역사에는 실제로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세 분 있었다고 하던데요, 다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흑인'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합니다. 확실한 건 그중 마지막인 겔라시오 1세 이후로 1500년 넘게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교황이 입는 수단은 전통적으로 순백색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흰옷을 입어온 사람들도 지금까지는 예외 없이 백인이었습니다. 포소가 검은 얼굴로 그 흰 수단을 걸쳤을 때, 늘 같이 다니던 두 흰색은 서로 갈라집니다.
마무리 — 상레 소리와 포소는 같은 이야기를 반대로 한다
정리하자면, 1관은 타인의 시선에 박제되었던 역사 속에서, '과연 누가 내 삶의 서사를 스스로 결정하고 기록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향해 걸어온 여정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상레 소리와 마지막의 사뮈엘 포소, 이 두 벽은 사실 같은 이야기를 정반대의 방식으로 건네고 있었습니다. 상레 소리의 손님들이 사진관의 소품과 배경막을 빌려 독립된 국가의 시민으로서 '되고 싶은 나'를 연출했다면, 포소는 서구 백인의 최고 권위인 교황복을 직접 입고 그 관습 자체를 도발적으로 뒤집어버립니다. 흑인 교황이라는, 현실에 없던 존재를 스스로의 몸으로 당당히 빚어내면서요.
아까 중간 벽에서 마주쳤던 비평가 아주 느와그보구의 글이 비로소 또렷하게 와닿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인을 제자리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도구들을 가져다 움직임의 수단으로 변모시켰다.' 사람을 식민지의 틀에 가두고 규정하려던 서구의 카메라는, 이곳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역사를 다시 쓰는 해방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포소는 관습의 벽을 온몸으로 뚫고 나가며 1관이 던진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고 방을 닫습니다. '내 삶의 이야기는 오직 나만이 편집하고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제 2관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는 데이비드 골드블랫과 그의 동료·제자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영월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 재생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