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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픽(Pick) 문화공간/행사

영월의 땅 이름을 찾아서

2026년 07월 31일
조현학
문화공간/행사

지명은 향토사의 보고寶庫다. 엄흥용 원장

'내가 쓰는 영월' 워크숍 특강에서 영월문화원의 엄흥용 원장은, '지명은 향토사의 보고寶庫'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절묘한 비유다. 향토의 역사는 중앙의 정사正史에 비해 제대로 기록된 적이 거의 없다. 나라의 큰 사건은 실록 등에 남지만, 습지를 종종걸음으로 건너던 마을이라 ‘잔다리’라 불렸다는 이야기는 사료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그런 걸 담아낸 거의 유일한 기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땅이름이니, 보물을 쌓아둔 창고인 '보고'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니다. 물론 여기서 지명은 한자라는 옷을 입기 전, 우리 고유어로 된 땅이름을 말한다.

지명 하나에는 그 땅의 지형,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 마을 사람들의 생업과 신앙, 심지어 삼국시대 전쟁의 흔적까지 켜켜이 쌓여 있다. 엄흥용 원장

서체를 개발하는 프로그램 중간에 엄원장을 초청하여 '땅이름' 특강을 마련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의 정체성을 '새로운 글자'에 담아내려는 서체 개발과, '기존 문자' 밑에 파묻힌 이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캐내려는 지명 탐구는, 방향은 반대지만 본질은 같다. 하나는 없던 꼴을 짓고, 하나는 이미 있는 꼴을 걷어낸다.

우리말 지명이 한자로 바뀐 건 신라 경덕왕 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엄흥용 원장

이러한 지명 개편은 통치자의 단순한 발상이라기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기획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방식은 일제강점기와 달랐다. 신라는 원래 지명의 뜻이나 소리, 지형을 살려 '번역'하는 쪽이었다면 (가람→江, 뫼→山), 일제는 무관한 두 마을을 강제로 합쳐 한 글자씩 떼어 붙이는 '조립' 쪽이었다.

방절리의 '마굿'은 뒷산이 소 형상(와우형국)이라 마구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었다. 일제가 토지대장을 만들며 전혀 관계없는 '삼 마麻' 자를 붙여 마곡麻谷으로 바꿔놓았다. 토교리의 왕박산도 마찬가지다. 원래 '임금 왕王' 자를 썼는데, 일제가 기운을 끊으려고 '왕성할 왕旺' 자로 슬쩍 바꿔 旺朴山으로 만들었다. 엄흥용 원장

우리나라의 한자어 지명은 정보가 아니라 '포장지'에 가깝다. 겉과 속이 다른 '두 겹' 구조를 지니고 있다. 안쪽엔 그 땅을 오래 보고 산 사람들이 붙인 순우리말이 있고, 바깥쪽엔 한자가 덧씌워져 있다. 문제는 이 포장지가 안쪽 내용물을 옮기기는커녕, 종종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꿔치기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름만 봐서는 뒷산이 소 형상이라는 것도, 이 산이 원래 임금 왕자를 썼다는 것도 알 길이 없다.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 갈 때 소나기가 쏟아져 '소나기재'가 됐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건 잘못된 통설이다. 실제로는 소나무 숲 속 고개라는 뜻의 '솔안이재'가 소리만 변해 '소나기재'가 된 것이다. 엄흥용 원장

정보가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가짜 정보로 대체된 것이다. 이렇게 본래의 뜻이 지워지고 나면, 그 빈자리엔 그럴듯하지만 엉뚱한 이야기가 덧붙게 된다.

진밭(길게 뻗은 밭), 너부내(넓게 흐르는 내), 달앗(산에 있는 밭), 산아몰(산 아래 옴폭 파인 마을), 잔다리(습지를 종종걸음으로 건너던 마을), 여우고개('작다'는 뜻의 옛말 '여우'에서 온 작은 고개). 엄흥용 원장

순우리말 지명을 풀어보면 그 자체가 이미 한 편의 사연이 된다. 이 이름들은 지형을 설명하고, 생활 방식을 설명하고, 사라진 옛말의 흔적까지 품고 있다. 그런데 한자로 바뀌는 순간 이 '사연'이 증발한다. '달아'이 '월전리月田里'가 되면 '산에 있는 밭'은 사라지고 '달빛 비치는 밭'이라는 낭만적이지만 실제와는 무관한 이미지가 대신 들어선다.

옛날 감옥이 있던 마을이라 '옥동獄洞'이라 불리던 곳이 있다. 감옥이라는 뜻이 거북하다는 이유로 소리는 그대로 두고 '구슬 옥玉' 자를 붙여 옥동玉洞이 됐다. 엄흥용 원장

심지어 한자는 뜻을 감추려고 쓰이기도 했다. 뜻을 못 살린 게 아니라, 아예 지워버리기 위해 한자를 쓴 경우다. 여기서 한자는 정보를 옮기는 그릇이 아니라 정보를 감추는 커튼이다.

세간에는 '쌍용양회가 이 마을을 접수하면서 회사 이름을 따서 마을을 쌍용리라 부르게 됐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데, 사실은 반대다. 1914년 용상리와 용하리가 합쳐지며 '쌍용리'라는 지명이 먼저 생겼고, 훗날 쌍용그룹 창업주가 이 상서로운 지명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엄흥용 원장

영월군 한반도면 안에 있는 쌍용리 얘기는 좀 다르다. 마을이 회사 이름을 따라간 게 아니라, 회사가 마을 이름을 빌려 간 셈이다. 알고 나면 웃음이 나는, 지명 하나가 뒤집어쓴 또 다른 종류의 오해다.

영월만의 일이 아니다.

이런 지명의 이중구조는 전국 어디서나 발견된다.

대전大田 : 한밭의 '큰'+'밭'의 뜻을 그대로 살렸다. 드물게 뜻이 온전히 살아남은 경우다.

대구大邱: 원형은 우리말 '달구벌'이다. 신라 경덕왕 때 '달'을 높은 곳이나 언덕으로 해석해 대구大丘라는 한자 표기를 덧씌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공자의 이름자 '구丘'를 다루기 '송구'하다는 이유로 글자를 슬쩍 바꿔 (피휘避諱) 오늘날의 대구大邱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공주公州: 고마나루에서 웅진熊津으로 '곰'이라는 뜻이 웅진에서 한 번 살아남았다가, 고려 태조 때 곰과 무관한 공주公州로 완전히 지워졌다.

어느 마을에서는, 노루가 다니던 골짜기 '노루울'이 노곡리가 됐고, 정겨운 '개울말'은 가유리佳柳里가 됐다. 전남 함평 학교면도 비슷하다. 원래는 '학다리(鶴橋)'였는데 한자음이 '학교學校'와 겹쳐 뜻이 묻혔다가, 원래 이름 '학다리'를 도로 찾고 있다.

요즘도 지명은 계속 바뀐다.

다만 이러한 '회복'의 노력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들이 지역 브랜딩이나 관광 홍보를 위해 지명을 다듬는 과정에서, 이 땅이 기억해 온 진짜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그럴듯한 새 이름을 앉히기도 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는 미명 아래 근거 없는 고대사 원조 경쟁을 벌이거나 예쁜 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속 보이는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옛 한자 지명이 본래 뜻을 가리는 '포장지'였다면, 이런 인위적인 새 이름은 알맹이조차 없는 '빈 상자'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격이다.

한자 지명이 이렇게까지 오래 쓰인 이유

한자는 선택된 게 아니다. 한자는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문자 생활 자체를 지배해 왔다. 한글이 창제된 뒤에도 한참 동안 공문서와 학문, 행정은 죄다 한자로 이루어졌다.

다만 지명에 한해서라면, 한자가 주는 약간의 편의도 분명 있었다. 한자는 각이 지고 뜻이 고정돼 있어서, 돌에 새긴 것처럼 오래도록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다루기 좋은 문자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순우리말 이름은 물렁하다. 세대를 거치며 소리가 슬쩍 바뀌고, 뜻이 잊히고, 새 이야기가 덧붙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물렁함이야말로 이 이름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굳은 돌은 안 변하지만 그만큼 이미 멈춰 있는 것이고, 물렁한 살은 계속 변하지만 그래서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한자 지명이 '보존'이라면, 순우리말 지명은 '생존'에 가깝다.

 

엄흥용 원장은 30년 가까이 지역을 답사하며 주민들의 구술을 채집하고 옛 문헌과 지도까지 대조해 가며 지명을 채록해 왔다. 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떠돌던 이름을 하나씩 캐내어 기록으로 남기고 증보판까지 이어낸 열정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결실이다.

이러한 지명 채록 작업이 영월이라는 한 지역에 그치지 않고 전국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지역마다 원주민의 기억과 다양한 설을 폭넓게 수집하고 기록을 더해간다면, 그 과정 자체가 살아있는 지역의 역사를 쌓아 올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땅이름의 유래라는 것이 본래 여러 설과 구전이 엇갈리기 마련이어서, 이 글에 옮긴 이야기들도 다른 문헌이나 원주민의 기억과 다를 수는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양한 기록과 해석을 폭넓게 수집해서 함께 담아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로부터 굳혀진 한자 이름에 맞서, 이 땅을 살다 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바닥에서부터(bottom-up) 끌어올리는 일. 그것이 이 향토사학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가치가 아닐까.

[이 콘텐츠는 영월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 재생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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