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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문화제 기간의 주말, 장릉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편안한 분위기의 공연장이 펼쳐졌다.
웅장한 무대도, 화려한 장치도 없다. 나무 사이 공터가 무대다. 천막 밑에 의자들을 놓아 객석을 만들었다. 오가던 사람들이 주변 아무데나 앉거나 서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 소박함이 오히려 이 공연의 결을 잘 살려준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작품은 바로 ‘장릉 낮도깨비’ 뮤지컬이다.
공연은 도깨비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이들은 밤에 해코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종을 지키는 '선한 도깨비'라고 했다. 관객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고, 웃음을 유도한다. 처음부터 객석과 무대를 나누지 않는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단종의 비극이다.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 오는 과정, 대신들이 세조에 맞서 찬반으로 갈라지는 장면이 노래로 그려진다. 이어 청령포 홍수로 관풍헌으로 잠시 거처
를 옮긴 단종, 결국 내려진 사약... 익히 알고 있는 역사지만, 숲속에서 노래로 듣는 이야기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정순왕후를 향한 단종의 그리움이다.
단종과 왕후의 감정을 이중창으로 풀어내는데, ‘살아 있는 이의 노래’와 ‘이미 떠난 이의 노래’가 교차하며 이어진다. 다소 극적으로 포장된 느낌도 있지만, 감정선 자체는 충분히 전달된다.
공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월 사람들이 단종을 지키고,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한 이야기를 통해 이곳을 ‘충절의 고장’으로 엮어낸다. 다만 전반적으로 ‘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비극적 사랑’이 다소 강조되면서, 현실감보다는 약간 이상화된 서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은 ‘방식’에 있다.
배우 수는 많지 않지만,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오가며 극을 끌어간다. 무대 전환도 거의 없다. 대신 배우의 동선과 몸짓, 호흡의 변화만으로 장면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런 절제된 방식이 오히려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단종의 왕릉이라는 장릉의 장소성은 공연의 의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인위적인 장치가 거의 없는 대신, 숲 자체가 무대이자 배경이 된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 바람 소리, 흙냄새가 극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감싸며, 단종의 비극적 서사와도 묵직하게 맞닿는다.
이 공연은 무언가를 ‘더하는’ 대신, 공간이 가진 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장릉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숲이라는 생생한 자연이 배우의 움직임과 결합해, 다른 어떤 무대에서도 재현하기 어려운 밀도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공연은 끝까지 관객과 함께 간다.
도깨비들은 중간중간 관객에게 말을 걸고, 반응을 끌어낸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함께 사진도 찍어준다. ‘서비스’라기보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나눈 사람들끼리의 자연스러운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배우들의 몸동작은 경쾌하고, 노래도 안정적이다. 공연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적당한 밝기를 유지한다. 비극을 다루면서도 관객을 편안하게 붙잡아 두는 힘이 있다.
마지막에 배우들이 부탁을 하나 한다.
공연이 괜찮았다면, 인터넷에 관람평을 남겨달라고. 소박한 공연이지만, 이런 기록이 쌓여야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