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읍내를 오가다 보면 곳곳에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을 알리는 게시대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나가며 이런 게시물들을 꽤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영월은 생각보다 다양한 문화활동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월문화관광재단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현수막이나 게시물 속에서도 의외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 현수막에 적힌 ‘영그리미’라는 이름이었다.
이름도 참 귀엽다.
마침 평소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제이큐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였기에 주말에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제이큐브미술관은 영월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지만 차로 이동하면 그리 멀지 않다. 강을 바라보며 드라이브하듯 이동하다 보면 제이큐브에 도착한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영그리미 창립전이 열리고 있어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은 모습이었다.
2층 전시관에 들어서니 영월 지역 평생학습 수채화 동아리 영그리미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그리미는 전문 미술인이 아니라, 그림에 관심을 가진 지역 주민들이 함께 수채화를 배우며 활동해 온 동아리다.
회원들은 짧게 모여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이어오며 그림을 배워왔다.
전시된 그림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림 속에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풍경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장면들이 많았다.
시골의 풍경, 농부의 하루, 익숙한 자연의 모습….
그런데 이상하게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아마도 그림을 잘 그렸다는 기술적인 부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오랜 시간 배워온 사람들의 마음이 작품 안에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난 마음이 조금 동그랗게 변하는 느낌.
그래서 ‘영그리미’인가 싶기도 했다.:)
전시를 둘러보다 영그리미 회장 조선희 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낯선 관람객에게도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설명해주시는 모습에서 동아리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수채화를 배우면서 색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
전공자가 아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가족들이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 주는 것까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단순히 취미 하나가 생긴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곽영옥 작가님의 ‘농부의 하루’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초창기부터 함께한 회원으로,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대로 그림을 그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골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림은 힐링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처럼 직접 전시를 해보는 경험은 또 하나의 성취가 된다고 했다.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힘이 생긴다는 말.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수채화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 강사님께서는 회원들이 한결같이 열심히 참여하는 점을 이야기해주셨다.
수채화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분야인데도 회원들이 꾸준히 배우고 작품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제이큐브미술관 관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전문 작가들의 전시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오랜 시간 배우고 활동하면서 만들어낸 작품을 직접 전시하고, 관람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시간과 열정을 중요하게 생각해 전시 공간을 내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영월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작품과 전시가 이 공간에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동아리 활동은 자칫하면 ‘함께 모여 그림을 배우는 것’에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관람객이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부터 그 활동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번 영그리미 전시는 그런 점에서 참 좋았다.
영월문화관광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해 동아리 회원들이 오랫동안 배워온 것을 실제 전시로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경험이 다시 회원들에게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었다.
문화활동이 지역 안에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런 연결이 중요한 것 같다.
전문 작가의 작품만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오랫동안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어온 사람들의 결과물도 전시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작품을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바라보고,
처음 만난 관람객에게도 자신의 그림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지역문화라는 것은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영월을 오가다 게시대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란 현수막 하나.
덕분에 이번 주말에는 그림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를 한 편 보고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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